꼬꼬무 선감학원 사건이란? 위치 원장 진실 안산 소년 감옥
꼬꼬무 '그 섬에 아이들이 있었다' 선감학원 사건 위치
선감학원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을 이루는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데요.
선감학원은 1941년 일제 강점기 말기에 설립되어 1982년까지 약 40년간 운영된 선감학원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위치한 선감도라는 섬에 있었던 수용소로, 부랑아들을 감화한다는 명목 하에 설립되었습니다.
선감학원 아동 강제노역 실체
선감학원에서는 수많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강제 노역, 폭력, 학대, 고문 등 인권을 유린당하는 참혹한 삶을 겪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해방 이후에도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시설'로 계속 운영되었으며, 경찰과 공무원에 의해 끌려온 4천700여명의 소년들이 염전, 농사, 축산, 양잠, 석화 양식 등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선감학원 사건의 진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10월, 미나미 지로 당시 총독의 지시로 세워진 선감원은 농사 지을 주민을 제외한 나머지 섬 주민들을 섬 밖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전국에서 부랑아로 지목된 소년 수백 명을 섬으로 잡아들여 수용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수용소는 거리의 불량아들을 감화하는 이른바 "감화원"이라는 미명 하에 설립되었습니다.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경범죄부터 항일 독립운동 행위, 정치범이나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이유로 잡혀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상적으로는 일반 학교와 유사한 학제를 제공받았지만, 선감원에 수감된 소년들은 공부를 할 여유 없이 강제로 노역에 종사했습니다. 심지어 잘못을 저지를 경우 처벌로, 손톱 밑에 뾰족한 대나무를 밀어넣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처우는 독립운동가들 또한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어린 소년들에게까지 이러한 고문이 가해졌습니다. 더구나 섬에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년들은 탈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선감학원 탈출을 시도한 소년들
탈출을 시도한 소년들은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갯벌로 향해 나가다가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생존자들에 의해 가마니에 싸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소년들 역시 전쟁 말기에 강제징용되거나 군사 훈련을 받아 전쟁터로 파견되는 등의 비참한 운명을 안게 되었습니다.
광복이후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시설'로 운영
8.15 광복 이후에는 선감원의 관리권이 경기도로 이관되었고, 이후 선감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다시 문을 열어 '부랑아 수용시설'로 운영되었습니다.
이 시설은 20세 미만의 소년들만을 수용하는 강제 수용소로 전환되었으며, 6.25 전쟁 발발로 선감도 전체가 미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전쟁 종료 후에는 경기도청이 직접 운영하는 부랑아 선도 수용 시설로 운영되었는데, 이 곳은 악명 높은 시설로 알려졌습니다. 1954년 4월에는 사무실, 교사, 관사 등의 건물이 신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감학원은 형제보육원과 삼청교육대와 닮은꼴?
해방 이후에도 거리의 부랑아들을 무작위로 모아 수용소로 보냈는데요. 이 과정에서는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과 같은 사례와 유사하게, 무고한 어린이나 청년들 또한 대거 포함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잔인한 고문과 강제 노역은 그대로 이어졌으며, 농업이나 양잠 등의 업무를 할당받았는데,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폭행이 당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삼청교육대와 유사하게, 대한민국의 군사정권 특유의 '머릿수 채우기' 악습으로 경찰들은 아무 의미 없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무나 마구 잡아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선감학원의 실상(진실)이 드러난 이유
선감학원의 실상은 오랜 시간 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생존자들의 증언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그 참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BBC News 코리아에 따르면, 선감학원에 10살의 나이에 들어간 김춘근 씨는 22년의 세월을 선감도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겪은 고통과 인권 유린의 기억을 고백했습니다.
선감학원에서의 생활은 극도의 영양실조와 폭력이 난무하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으며, 많은 아동들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진실화해위의 유해발굴 조사 결과, 숨진 소년들이 암매장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선감학원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 사건을 통해 과거 정부의 인권 침해와 국가 폭력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복지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으며,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현재 선감학원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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